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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은 우연(偶然)의 형태로도 실현된다대리기사가 우연히 ‘주워듣고’ 세상에 고발한 KBS 실세의 막후 인사 음모
  • 이동명 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0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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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KBS직원들

우연도 이런 우연이….

KBS순천방송국장을 지낸 김종명이라는 기자가 있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성격에 이념 스펙트럼이 넓어 포용력 있는 기자인데, KBS 내에서는 강골로 분류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때문인지 능력평판에 걸맞지 않게 한직으로 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순천방송국장으로 재직하다가 고대영 사장체제 퇴진을 요구하는 KBS직원들의 제작거부 투쟁에 동참해 8월25일 그 보직을 사퇴했다. 무보직을 감수할 것이니 집이 있는 서울로 발령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보도본부장에게 피력했고, 그것이 일단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8월27일 일요일 저녁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단이 생겼다. KBS 메인뉴스 앵커를 지낸 ‘유명인사’인 박영환 KBS 광주방송총국장이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골프장에서 대리기사를 불렀다(광주방송총국장 발령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집은 여전히 서울이라고 함). 골프를 친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 겸 술을 먹은 듯했다. 접대한 듯한 사람이 차까지 따라 나와 대리기사에게 3만원 대리비를 내주며 “유명한 분이니 잘 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서울 방배동 자택까지 오는 과정에서 박영환은 7번 통화를 했다고 한다. 주된 통화는 김종명을 서울로 발령 내지 말도록 요구하여 관철해 내기 위한 것. KBS 김우성 인력관리실장과 홍기섭 보도본부장에게 전화해서 ‘김종명 국장 서울에 보내지 말라’고 했으나, 보도본부장 등이사실상 사장도 승인한 사안이라면서 난색을 표하자 이번에는 직접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 사장과의 통화에서 박영환은 김종명을 현 고대영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위험인물로 지목하면서 절대로 서울로 발령 내면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이어 박영환은 인력관리실장에게 전화해 “사장님하고 통화했으니 김종명 국장 지역에 그냥 두라”고 했다는 것. 그 이후 김종명은 실제로 광주방송총국 심의실 평직원으로 발령이 났다. 김종명은 KBS입사 기수로 따지면 박영환의 몇 기수 선배다. 선후배 지위가 뒤바뀔 수는 있지만, 후배가 선배를 앞질러 상관이 되었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선배 예우를 해주는 것이 언론계의 관행일진대, 그나마 무보직 서울발령까지 훼방 놓은 것은 너무 야비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은 그 대리기사가 우연히 주워듣고 기억한 내용이다. 순천방송국장, 보도본부장 등의 직명이 나오고, 박영환 스스로 고대영 사장과의 통화에서 먼저 ‘박영환입니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니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영환의 전화통화가 KBS 내부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그 대리기사는 특히 강자에 휘둘리면서 하루아침에 인사발령이 뒤바뀌는 김종명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다음날 언론단체 등 몇 곳에 전화해서 이같은 상황을 제보했고, 그것이 KBS노조에까지 전해져서 세상에 폭로되었다.

노조는 이같은 제보를 접수하고 일단 박영환에게 ‘김종명 인사발령에 관여한 일이 있느냐’고 직접 질문했었다고 한다. 물론 박영환은 이를 부인했었다. 노조가 대리기사의 증언을 제시하자 침묵 모드로 들어갔다고 한다.

KBS 9시뉴스 앵커까지 하면서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박영환에게는 이 사건이 치명상이 될 듯하다. 고대영 체제의 핵심인사이니 하는 거시적 담론을 떠나서,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은 의혹(적어도 대리기사 비용은 접대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막후에서 선배 인사가지고 장난치고 시치미 뗐다는 점 등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리기사가 투명인간이 아닐진대, 뻔히 타인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박영환은 왜 겁 없이 이런 통화를 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오만 때문일 것이다.

애초 박영환은 호남출신으로, 친 DJ(김대중 전 대통령) 성향의 기자로 알려져 있다. 보수 정권과는 출발선이 달랐던 셈. 그러하기에 박영환에 대해서는 그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승승장구했고, 고대영 체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권인 현 문재인 정권과도 적당히 어울릴 수 있는 인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회색지대에서의 생존가능성’이 정권교체 이후 KBS내에서의 박영환의 자신감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하필이면 대리기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고 수고를 해가며 세상에 폭로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오. 그점에서 그의 폭로는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이다. 강자의 오만이 초래하고, 약자에 대한 공감이 끌어당긴 필연.

최근 KBS에서는 또다른 필연적 제보가 있었다고 한다.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KBS이사인 K교수가 이사에게 주어진 업무추진비 카드로 애견샵 비용을 결제했던 사실이 그 애견샵 주인의 제보로 밝혀졌다(업무추진비는 업무와 관련된 곳에만 써야하기 때문에 애견샵에서 쓰는 것은 금지되고 있음). 그 애견샵 주인이 KBS관련 뉴스를 보다가 자신의 가게에 와서 KBS카드를 갖고 결제하는 단골손님이 KBS이사임을 알게 됐고, 그 KBS법인카드 결제가 불법 아니냐는 취지로 제보했다는 것이다. K교수에게는 망신을 부른 그 제보 또한 부조리를 저지른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것이다.

사필귀정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이동명 칼럼니스트  100real@newsre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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